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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만든 관계, 세계의 충돌, 진심의 자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피가 아니라 시간이 만든 관계성공지향적인 건설회사 간부 료타는 모든 것을 계획대로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예기치 못한 소식이 전해진다. 여섯 살 된 아들이 출산 직후 병원에서 뒤바뀌었다는 것. 충격은 컸고, 현실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피로 연결된 관계일까, 아니면 함께 쌓아온 시간과 감정일까.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극적인 상황을 차분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의 연출은 늘 그렇듯 과장을 피해가며,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좇는다. 관객은 료타의 혼란을 따라가며 스스로에게도 묻게 된다. 나는 누구를 ‘내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25. 5. 20.
장수상회 특별한 만남, 피어나는 순간들, 감정과 마주하기 장수상회 조용한 동네, 특별한 만남소박한 골목 안 장수마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마치 오래된 수채화처럼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곳의 주인은 말수가 적고 고집 센 장 씨 할아버지.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과는 딱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다. 그런 그의 일상에 화사하게 들어선 인물이 성님이다. 발랄하고 다정한 그녀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영화는 이들의 첫 만남을 유쾌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선으로 풀어낸다. 두 인물이 어색하게 마주치는 순간부터, 서서히 스며드는 관심까지 천천히 담아낸다. 감독 강제규는 젊은 연애가 아닌, 시간을 품은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나이 들수록 더 단단해지는 마음의 결을 조명한다. 배경인 재개발이 예정된 오래된 동네는 두 인물의 인생처.. 2025. 5. 19.
리틀 포레스트 마주한 고요함, 스며든 위로, 삶의 방식 리틀 포레스트 도시를 떠나 마주한 고요함시끄러운 도심과 이력서, 시험, 인간관계에 지쳐 잠시 멈춘 한 인물의 발걸음이 고향으로 향한다. 그 선택은 도피라기보단 숨을 고르기 위한 일시정지처럼 보인다. 돌아간 시골집은 겨울의 한기가 가득했지만, 낡은 벽과 텃밭, 그리고 어릴 적 기억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매일 아침 일어나 땔감을 모으고, 작은 불에 밥을 짓는 일상은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이 단순함 속에서 마음의 결은 조금씩 펴져간다. 감독 임순례는 북적이지 않는 화면 구성으로 고요함을 강조한다. 배경 음악조차 절제되어 있고, 카메라는 인물보다 주변 풍경을 오래 비춘다. 그 긴 호흡이 어느새 관객에게도 스며든다. 계절은 흐르고, 그에 따라 바뀌는 삶의 속도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건 단순한 귀향 .. 2025. 5. 18.
영화 동주 흐르는 청춘, 담았던 사람, 공존하는 시선 영화 동주 조용히, 그러나 깊게 흐르는 청춘흑백으로 시작하는 화면 속에서 한 청년이 조용히 걸어간다. 말보다 시가 많았고, 울분보다 질문이 많았던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조용한 저항이었다.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격동의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끝없이 묻던 청년이었다. 영화는 그가 남긴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처럼,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담히 따라간다. 친구 송몽규와의 대비되는 선택은 단순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였다. 감독 이준익은 격렬한 외침 대신 고요한 침묵 속 진심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윤동주의 내면을 풀어간다. 빠른 편집이나 과한 연출 없이, 느린 호흡으로 다가오는 화면은 시처럼 느껴진다. 청춘의 불안과.. 2025. 5. 17.
영화 소원 따뜻한 시선, 회복되기까지, 마음의 온기 영화 소원 슬픔을 감싸는 따뜻한 시선비 오는 어느 날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한 아이에게 닥친 비극에서 출발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자극적인 재현 대신,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상처를 겪은 소녀와 그 가족이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까지의 과정을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비춘다. 감독 이준익은 고통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그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마음에 집중한다. 연출은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강요되지 않는다. 카메라는 주인공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듯, 그녀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어른들은 무력해지고, 아이는 말을 잃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 덕분에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슬픔을 덜어주기보다, 함께 안아주는 쪽을 택한다.소원이는 여느 아.. 2025. 5. 16.
자산어보 사람의 향기, 마주한 진심, 머무르지 않는다 자산어보 흑백의 바다에 담긴 사람의 향기눈부시게 푸른 바다가 아닌, 고요하고 단단한 흑백의 바다가 펼쳐진다. 영화는 색을 덜어낸 대신, 인물의 표정과 바람의 결을 더 깊이 새겨넣는다. 유배된 학자 정약전과 섬마을 청년 어부 창대. 이 둘은 신분과 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지만, 서로를 통해 삶의 지평을 넓혀간다. 정약전은 책과 학문을 품었지만, 현실을 바꾸지 못한 지식인이었고, 창대는 세상의 이치를 몸으로 익혔지만,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없는 처지였다. 영화는 이들이 함께 어류를 기록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삶의 무게와 의미를 교차시킨다. 이준익 감독은 대사보다 시선에, 설명보다 침묵에 집중한다. 흑백이라는 시각적 선택은 시대적 배경을 재현하기 위한 도구이자, 그 시대에 놓여 있던 인간의 조건과 질문을.. 2025.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