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rkers 잃어버린 필름의 기억
싱가포르의 영화감독 산디 탄의 자전적 다큐멘터리로, 젊은 시절의 꿈과 상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되찾은 기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992년, 영화광이던 18세의 산디는 친구들과 함께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자신들이 쓰고 직접 출연한 독립영화 를 촬영한다. 이들의 영화는 싱가포르 영화사에서 보기 드물었던 독창적인 시도로, 당시로선 전례 없는 창작이었다.
그러나 편집을 맡았던 미국인 영화 강사 조지 카도나가 필름을 가지고 사라지면서, 완성되지 못한 채 영화는 역사 속에 묻히게 된다. 그리고 수십 년 후, 카도나가 사망하면서 그녀는 그의 유품에서 잃어버린 필름을 되찾는다. 이 다큐는 잃어버린 시간과 꿈, 그리고 그 기억을 되짚는 여정을 따라가며, 단순한 회고를 넘어 창작과 상실의 의미를 되묻는다.
영화감독 산디 탄이 십대 시절 찍었던 독립영화의 필름이 사라졌다가 20여 년 뒤에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실화 기반 다큐멘터리다. 1992년, 산디는 친구들과 함께 싱가포르를 무대로 독창적인 영화를 찍는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여성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제작한 영화는 전무했기 때문에, 이 작업은 그 자체로 혁신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을 지켜보던 영화 강사 조지 카도나가 완성 전 필름을 가지고 사라지면서 영화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수십 년이 흐르고, 조지의 사망 소식과 함께 산디는 그의 유품에서 잃어버렸던 필름을 다시 찾게 된다. 영화는 산디의 기억 속에 있던 그 시절로 돌아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되짚는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창작자로서 자신을 복원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창작과 배신 사이에서
단순히 한 작품의 실종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젊은 여성들의 창작욕과 그것이 쉽게 무시되고 침해당하는 현실을 고발하며, 꿈을 잃은 자들이 겪는 정체성의 상실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산디 탄과 그녀의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조지라는 인물은 그것을 통제하려 했고 결국 자신만의 권력으로 이용했다.
이 사건은 성별과 권력 구조, 그리고 창작의 주체성에 대한 상징적인 사례로 작용한다. 또한, 필름이 사라진 20여 년의 시간은 단지 물리적인 손실이 아니라 여성 창작자들이 잃어야 했던 기회와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그런 상처를 단순한 회상이나 분노가 아닌, 창작을 향한 집요한 열정으로 다시 복원해낸다. '잃어버린 영화'는 결국 창작의 욕망과 회복을 상징하는 도구로 재탄생한다.
단지 잃어버린 필름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 창작자가 겪는 억압과 침묵의 역사를 담고 있다. 산디와 친구들은 누구보다 창의적이었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조지는 마치 후견인처럼 행동하며 그들의 창작물을 제 것인 듯 다루고 결국 그것을 빼앗는다. 이 사건은 여성의 재능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침묵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축소판이며, 여성이 중심에 서는 창작이 왜 그렇게 어렵고 소중한지를 말한다.
또한 20여 년 후 산디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는 과정은, 상실의 기억을 주체적 언어로 다시 세우는 복원의 상징이다. 그녀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말하지 못했던 분노와 아쉬움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며 자기 서사를 되찾는다.
과거를 복원하는 감정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픽션보다 극적이며 아름답다. 영화는 과거의 VHS 영상과 사진, 인터뷰, 산디 탄의 내레이션을 유기적으로 엮으며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이끌어간다. 단순히 분실된 영화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감정과 관계, 시대적 배경까지 다층적으로 탐색한다.
특히 중반 이후, 필름이 돌아오고 난 뒤 그녀가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창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다큐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상실감과 되찾음의 기쁨, 그리고 무기력함 속에서 피어나는 자존심을 담아낸다. 시청자는 이 작품을 통해 창작이란 단지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지는 정체성의 총합임을 깨닫게 된다. 그 어떤 설명보다도 감정으로 말하는 영화이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진짜 이야기다.
다큐멘터리이지만 구성과 리듬 면에서 오히려 한 편의 예술 영화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영상, 산디의 내레이션, 인터뷰, 아카이브 화면이 조밀하게 엮이며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편린들이 모인 일기장처럼 구성된다. 산디는 마치 감정을 눈으로 써내려가듯 섬세하게 화면을 채운다.
이 다큐의 놀라운 점은, 관객에게 창작의 기쁨뿐만 아니라 그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 그리고 그것을 되찾았을 때의 복합적인 감정을 모두 체험하게 한다는 점이다. 또한 감독 자신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그것을 자의식 과잉으로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된 방식으로 담담히 풀어낸다. 이 영화는 창작에 대한 회고인 동시에 창작을 통한 복원의 작업이며, 여성의 목소리를 되찾는 강력한 선언이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다’는 행위의 감정적 본질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