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상에도 구겨진 하루를 풀어주는 노란 단면
어떤 날은 하루가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말 한마디에도 예민해지고, 별일 아닌데도 기운이 쭉 빠지는 그런 날. 그럴 땐 부엌에 천천히 들어가 재료를 꺼낸다. 계란 두세 개를 그릇에 풀고, 젓가락으로 서툴게 휘젓는 소리가 잠시 마음을 다독인다. 파를 썰어 넣을지 말지, 치즈나 햄을 추가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은 소금만 조금 넣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달군 후, 계란물을 붓는다. 가장자리가 익기 시작할 때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말아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실패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 뒤집을 때의 손 떨림, 그런 것들이 조금은 웃기면서도 소중하다. 잘 말린 단면을 자르다 보면 노란색 속에 아주 조금의 고소함이 숨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혼자 먹는 밥상이라도, 따뜻하게 부쳐낸 이 한 조각만으로 하루가 조금은 나아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런 순간이 꽤 괜찮다.
식은밥과 어울릴 수 있는 반찬을 찾다 보면, 계란이 늘 손에 잡히곤 한다. 그 속은 간단한 듯 보이지만, 만들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같은 불, 같은 팬인데도 어떤 날은 너무 부드럽고, 어떤 날은 가장자리가 바삭해진다. 정답은 없다. 말다가 터질 수도 있고, 모양이 삐뚤어질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쩌면 지금의 내 상태를 그대로 담아낸 결과 같아서 더 좋다. 반듯하지 않아도 괜찮다. 식탁 위에 놓은 그것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지고, 여전히 나를 돌보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 조각을 입에 넣을 때,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편안함이 가득하다. 가끔은 간장 한 방울을 살짝 찍어 먹으면 감칠맛이 살아나기도 한다. 이렇게 소소한 반찬 하나가 하루의 기운을 달리 만들어준다.
은은한 깊이가 남는 부드러운 국물
집에 돌아왔을 때 찬 기운이 느껴지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따뜻한 국물이다. 진하게 우러난 육수에 된장 한 스푼을 풀고, 마른 다시마나 가쓰오부시로 감칠맛을 더하면 조용하고도 깊은 향이 퍼진다. 그 국물 안에 잘게 썬 두부와 파, 가끔은 버섯 한 줌 정도 넣는 것도 괜찮다. 끓이는 동안 퍼지는 향은 마음을 천천히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부드러운 맛은 자극적이지 않지만,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다. 혼자 먹는 식사라 해도 국 하나만 있어도 밥이 달라진다. 어쩌면 국물 요리라는 건 입을 위한 것보다도 마음을 위한 게 아닐까 싶다. 식탁에 올린 작은 그릇 하나로, 오늘 하루가 조금은 덜 공허하게 느껴진다. 다른 반찬이 부족해도 괜찮다. 소박한 한 모금이 속을 달래주고, 그 따뜻함이 쌓이면 생각보다 멀리까지 이어진다. 특별할 것 없는 요리지만, 조용히 나를 위로해 주는 그 맛이 있어서 오늘도 그 냄비를 꺼내게 된다.
요즘은 국을 끓이는 일이 사라진 집도 많다. 간편식이 자리 잡고, 배달 음식이 익숙해진 지금은 국물 요리를 일부러 만들지 않게 된다. 하지만 한번 다시 끓여보면 알게 된다. 수저를 들기 전부터 퍼지는 향이 있고, 뚝배기 속에서 천천히 끓어오르며 생기는 미묘한 온도가 있다는 걸. 조미료 없이도 맛을 내는 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다시마와 멸치, 된장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여기에 작은 채소 하나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국물의 인상이 바뀐다. 입에 닿았을 때 자극 없이 부드럽게 퍼지고, 먹고 나서 속이 편안하다. 국이 맛있으면 다른 반찬이 부족해도 허전하지 않다. 특히 혼자 있을 때는 이런 국물 한 그릇이 외로움을 덜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집밥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이자, 매일의 삶을 뿌리처럼 붙잡아주는 음식이다.
소리 없이 입안에 퍼지는 짭짤한 위로
입안에서 바삭한 소리가 나지 않아도, 작은 반찬 하나가 주는 위안은 꽤 크다. 마른 반찬이라 부르기엔 너무 성의가 담긴 볶음은, 그 짭짤함 속에 어딘가 모르게 정이 묻어난다. 손끝으로 하나하나 뚝뚝 떨어뜨리며 먹는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음식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고추와 함께 볶으면 살짝 매콤한 맛이 돌고, 견과류나 들기름을 더하면 풍미가 확 달라진다. 적당히 바삭하면서도 너무 딱딱하지 않게 볶아야 실패가 없다. 혼자서 먹는 밥에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없으면 섭섭해지는 그런 존재다. 이 작은 반찬을 씹다 보면 어린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싸줬던 엄마 손이 떠오르기도 하고, 혼자 자취하던 시절 만들어 냉장고에 보관해두던 그날들이 떠오른다. 한 끼 식사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 자리를 조용히 채워주는 점잖은 조연 같은 느낌. 별거 아닌 듯하지만, 이 작고 짭조름한 맛이 집밥의 균형을 잡아준다. 그렇게 혼자의 밥상도 조금은 완성되어간다.
지퍼백에 소분해두고 꺼내 먹을 수 있는 반찬이라, 바쁜 아침에도 한 입 올리기 좋다. 짧은 시간에 조리할 수 있는 반찬이지만, 볶을 땐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너무 센 불로 볶으면 탈 수 있어서 중불로 천천히 볶아야 하고, 젓가락보단 나무 주걱이 더 낫다. 중간에 간장이나 설탕을 추가할 때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조림처럼 돼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단순한 음식이 의외로 까다롭다. 하지만 그 과정을 차근차근 거치면, 짠맛 속에 숨겨진 고소함이 있다. 혼자 사는 이들에게 특히 유용한 메뉴이기도 하다. 며칠 두고 먹어도 맛이 쉽게 변하지 않고, 다른 반찬 없이도 밥을 부르는 힘이 있다. 혼자 밥을 먹을 때 말을 대신해주는 느낌이랄까. 한 입 한 입 씹을 때마다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