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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히어런스 현실의 정체, 흔들리는 관계, 그것이 현실

by amange100 2025. 4. 18.

코히어런스 관련 사진
코히어런스

코히어런스 균열 속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정체

코히어런스는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이한 현실 붕괴를 그린다.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라는 평범한 순간, 하늘에 떠오른 혜성이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하며 현실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처음엔 단순한 정전이나 통신 장애처럼 보이던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로 이어진다. 주인공들은 문밖으로 나간 뒤 돌아오며, 자신들이 있던 공간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른 현실을 마주한다. 동일한 장소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들, 조금씩 어긋난 대화와 기억의 단서들이 겹치며 혼란은 더욱 증폭된다. 이 영화는 대규모 특수 효과 없이도 불안과 스릴을 증폭시킨다. 관객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함께 현실을 의심하게 되며, 극 중의 폐쇄된 공간은 점점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미궁으로 변해간다.

작품은 SF 장르의 전형적인 시각적 요소보다, 캐릭터 간의 대사와 심리 묘사를 통해 긴장을 유발한다. 현실이 겹치는 순간, 등장인물들은 외부보다 내부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이들이 진짜 내 친구인지, 내가 지금 있는 현실이 '원본'인지 알 수 없는 상태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 존재론적 혼란으로 번진다. '진짜 나'와 '타인'의 경계가 무너질 때, 사람은 누구를 신뢰할 수 있을까?

혜성의 접근이 단순한 과학적 현상을 넘어 현실을 분기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영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사람, 같은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아주 미세한 차이들이 관객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는 관계

이야기의 중심이 현실의 중첩이라면, 그 안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흔들리는 건 인간관계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이, 혜성으로 인해 미묘하게 다른 인물들로 바뀌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과거의 일들이 반복되며,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계산하고 긴장한다. 주인공 엠은 자신의 연인조차 진짜 그 사람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 ‘가장 안전한 현실’을 찾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이 영화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실제가 되기까지,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가보다, 어떤 상황이 ‘내가 원하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아이러니가 계속 반복된다. 코히어런스는 SF의 탈을 쓴 인간 심리극이기도 하며,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된다.

서로 다른 현실들이 교차할수록 인물들의 표정은 무너져간다. 그들은 점점 ‘진실’을 추적하는 대신, ‘덜 위험한 거짓’을 선택하려고 한다. 현실이 너무 복잡해질수록 사람은 스스로의 감각을 더 신뢰하지 않게 되고, 결국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여기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심리적 스릴러로 변모하며, 관객은 어떤 선택이 옳았는가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되묻게 된다.

관계의 본질은 결국 ‘기억’에 있다. 내가 기억하는 네가 진짜 너일까, 아니면 내 안에서 구축된 이미지일 뿐일까? 현실이 뒤엉킬수록,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조차 낯설게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무섭고도 슬픈 지점이다.

가장 안정적인 혼란, 그것이 현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있던 현실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른 ‘현실’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그 선택은 더 깊은 미궁으로 이어질 뿐이다. 영화는 이처럼 무수히 반복되는 가능성의 바다 속에서, 인간이 과연 어디에 정착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가장 나은 현실'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혹은 그것은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엠이 도달한 마지막 결론은,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선택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현실을 선택하고 싶어 한다. 이 작품은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코히어런스는 결국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타인과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혼란은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현실은 우리가 믿는 만큼만 존재한다. 영화는 이 전제를 기반으로,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를 보여준다. '혼란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욕망'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지 기묘한 설정이 아니라, 매우 본질적인 인간 심리를 파고든다.

영화의 말미에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했든, 그 결과보다 중요한 건 그가 선택 ‘과정’에서 보여준 감정들이다. 혼란의 중심에서 보여준 그 떨림과 욕망이야말로, 현실보다 더 선명한 진실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또 믿음과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기억과 관계, 그리고 진실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 우리는 결국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 심리적 미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