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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 우정의 시작, 마음의 간격, 남는 잔상들

by amange100 2025. 5. 28.

영화 우리들
영화 우리들

영화 우리들 여름 햇살 아래 맺어진 우정의 시작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던 여름방학, 아이들의 우정은 그렇게 느슨하고도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소극적이지만 마음이 깊은 선과 전학 온 지아는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다. 둘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짧고 엉성하지만, 오히려 그 솔직함이 마음을 열게 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하찮아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이, 아이들에게는 전부다. 감독 윤가은은 이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최대한 낮은 시선에 두었다.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 교실의 칠판 밑, 복도 구석 같은 공간은 그들의 세계를 상징하며, 어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작은 갈등과 연결이 싹튼다.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 기법은 아이들의 얼굴에 감정을 더 또렷하게 새긴다. 선의 머뭇거리는 눈빛, 지아의 망설이는 표정 하나하나가 말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친해진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던 낯설고도 따뜻했던 감정들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처음 만난 건 여름방학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놀이터에서 조용히 놀고 있던 선은 전학생 지아와 마주친다.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 속에서도 둘은 금세 가까워진다. 물총 놀이, 도시락 나눠 먹기, 비밀 이야기. 그렇게 천천히 쌓인 시간들이 소중한 우정의 시작이 된다. 감독은 이 시기를 특별하게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하게 그려낸다. 자연광과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이 감정은 과장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 둘 사이의 웃음과 머뭇거림, 그 미세한 감정들은 어른들 눈에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그 순간의 선에게는 전부였다. 그 섬세한 결을 따라가며, 우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조금씩 되새기게 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의 간격

아이들의 세계도 결코 단순하지 않다. 친구를 사귀고, 친해지고, 멀어지는 그 모든 감정은 말보다 복잡하다. 선과 지아의 관계는 어느 순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작은 오해 하나가 쌓여 큰 벽이 되고, 말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점점 부풀어 오른다. 선은 외롭고 서툴지만 누군가와 진심으로 연결되고 싶어 하고, 지아는 어딘가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려 한다. 이 미묘한 간격은 어른들이 보기엔 사소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겐 하루를 무너뜨릴 만큼 큰 문제다. 영화는 이 감정의 틈을 조용히 따라간다. 직접적인 갈등보다 눈빛과 태도, 분위기로 감정을 보여준다. 학교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밀실이 된다.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지, 쉬는 시간에 누구 곁에 서 있는지가 그들의 위치를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윤가은 감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아이들의 ‘사회성’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어른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아이들의 언어와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진짜 감정의 조각들을 차분하게 이어 붙인다.

시간이 흐르며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긴다. 작은 오해, 짧은 침묵, 타인의 시선들이 그 틈을 조금씩 벌린다. 지아는 학급에서 인기 있는 무리에 어울리게 되고, 선은 점점 외톨이로 밀려난다. 가까웠던 친구가 자신을 피하는 듯한 순간, 선의 마음에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자리 잡는다. 하지만 그 감정은 또렷하게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갈등을 소리치거나 폭발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모든 감정은 조용히 쌓여간다. 아이들의 사회는 어른보다 훨씬 직설적이면서도, 동시에 훨씬 복잡하다. 눈빛 하나, 자리를 바꾸는 몸짓 하나에도 위계와 관계가 숨어 있다. 감독은 이런 순간들을 건드리지 않고, 마치 관찰자처럼 따라간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 틈 사이에 숨은 감정들을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조용하지만 깊게 남는 잔상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는다. 큰 사건 없이 흐른 것 같은 이 영화는 오히려 그 조용함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선과 지아의 마지막 장면은 명확한 화해도, 명료한 결말도 아니다. 그러나 그 모호함 속에서 진짜 감정이 느껴진다. 이해하려 노력하고, 어설프게나마 용서를 건네는 그 과정이 아이들의 성장이다. 관객은 어느새 선이나 지아 중 누군가의 마음을 빌려 자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혼자였던 시간, 오해로 멀어진 친구, 끝내 말하지 못한 미안함까지. 윤가은 감독은 어떤 판단이나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의 감정을 꺼내어 우리 앞에 놓아두고, 가만히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섬세한 감정선은 음악이나 편집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인물들의 표정과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그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은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히고, 그들이 주고받은 말들이 귓가에 맴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진짜 힘이다.

이야기는 끝나도, 감정은 남는다. 어떤 화해나 설명도 없이 마무리되는 장면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여운이 번진다. 둘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멀어진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게 유연하고 모호하다. 어른처럼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감정을 어설프게나마 끌어안고 지나간다. 이 영화는 그 어설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관객도 각자의 기억 속 유사한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외로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름, 혹은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미안함.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그저 아이들의 조용한 세계를 펼쳐 보이며, 우리 각자 내면의 감정을 꺼내게 만든다. 그게 바로 이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