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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걷기왕 걷는 법, 좋은 성장, 벗어난 리듬

by amange100 2025. 6. 1.

영화 걷기왕
영화 걷기왕

영화 걷기왕 달릴 수 없다면, 천천히 걷는 법

누구에게나 잘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게 운동이든 공부든, 혹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이든 간에. 주인공 만복이는 달리기를 유난히 못한다. 그런데 웃긴 건, 그게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라는 거다. 달리기를 못해도 걷는 건 꽤 잘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세계를 조금씩 넓힌다. 감독은 이 단순한 전제를 유쾌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낸다. 무언가 잘해야만 의미 있다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걷기'라는 가장 일상적인 동작이 빛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든 셈이다. 이 작품은 경쟁보다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웃음기 가득한 장면들 사이에, 조용히 전해지는 위로가 있다. 겉으로는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시선은 묵직하다. 배경이 되는 교실, 집, 골목길 모두가 그녀의 세계이고, 그 세계를 천천히 걸어가며 발견하는 자신만의 가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모든 사람이 달릴 필요는 없다. 어떤 이는 걷는 게 더 어울릴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달리기를 유난히 못하지만, 걷기에는 묘한 끈기가 있다. 그 평범한 능력이 하나의 길이 되고, 삶의 중심이 되어간다. 특별하지 않은 능력으로도 스스로를 믿게 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교실 안 어딘가에서 존재감을 잃은 소녀가, 자기만의 페이스를 인정받게 되는 순간들이 반짝인다. 감독은 이 서사를 억지로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풀어낸다. 경쟁 사회 속에서 항상 앞서야만 한다는 강박을 살짝 비껴간 이야기는, 보는 사람에게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그렇게 천천히 걷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발견해나간다.

비뚤비뚤하지만 그래서 좋은 성장

사춘기란 건 어딘가 울퉁불퉁하고, 꼭짓점이 잘 안 맞는 시기다. 영화는 이 시기를 억지로 다듬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삐뚤고 웃기고 조금은 엉뚱한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야기는 유쾌하고 가볍지만, 동시에 진심이 느껴진다. 만복이는 뛰지 않고, 경쟁도 별로 하지 않지만, 그 와중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려고 애쓴다. 때로는 친구들과 어색해지고, 때로는 선생님과 엇갈린다. 그 모든 순간들이 누구의 성장과도 다르지 않다. 감독 백승화는 이 과정을 강요하지 않고 지켜본다. 마치 낙서 같은 만복이의 일상이 펼쳐지는 방식이다. 자주 웃고, 가끔 울고, 종종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지는 청춘. 그런 찰나들을 모아두니 그 자체로 하나의 흐름이 된다. 이야기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10대 시절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으니까.

어른들이 말하는 ‘성장’은 항상 반듯하고 예쁘게 포장되어 있지만, 현실 속 성장기는 늘 삐딱하고 서툴다. 만복이의 이야기는 그런 진짜 성장을 보여준다. 자주 실수하고, 가끔 억울하고, 이유 없이 화가 나기도 하는 그런 시절의 감정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그녀는 잘하고 싶지만 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텨보려 애쓴다. 친구들과 어색해지는 순간도 있고, 가족과 싸우는 날도 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모양이 단단해진다. 영화는 이 성장의 단면을 억지스러운 감동 없이 조용히 따라간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그 서툰 감정들이 묘하게 공감된다.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난 리듬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걷는다는 건 의식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 '느림'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린다. 만복이가 살아가는 공간은 학교와 집,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들이다. 익숙한 골목과 낡은 벤치, 햇살이 비치는 창틀 같은 장소들이 매 장면마다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아주 큰 세트보다 더 깊은 공감을 만든다. 카메라는 주인공을 빠르게 쫓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 늦게, 또는 옆에서 묵묵히 따라간다. 덕분에 관객은 단순한 시선을 넘어서 그 인물의 호흡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느린 리듬 속에서 질문 하나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나는 지금 어디쯤 걷고 있을까?’ 만복이의 이야기 속에는 거창한 메시지가 없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일상의 반복이 주는 리듬은 어떤 격언보다 선명하다. 숨 고르듯 천천히 보여주는 풍경과 감정은, 묘하게 마음을 눌러주며 오래 기억에 남는다.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걷는다는 건 오히려 멈추겠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그리는 일상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사람들의 목소리, 학교의 종소리, 골목길의 자전거 소리까지 차분히 담아내며, 익숙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를 그린다. 만복이는 그 공간 속을 걷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속도보다, 지금을 살기 위한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연출은 인물의 감정을 빠르게 몰아붙이지 않고, 그저 기다리며 따라간다. 덕분에 관객은 그 느린 리듬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된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할 수 있지만, 그런 느림이야말로 요즘 우리가 잊고 지내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도, 걸어가던 그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