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프라핏 감옥이라는 작은 세계, 생존의 법칙을 배우다
감옥은 단순히 자유를 잃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또 다른 사회, 더 잔혹하고 더 직접적인 규칙이 지배하는 작은 세계다. 그곳에 던져진 젊은 청년 말리크는 처음엔 그저 약자였다.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감옥은 약자를 오래 두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그는 하나씩 배워간다. 힘의 논리, 거래의 방식, 사람을 죽이는 법. 아 프라핏은 그 과정을 잔인하게 솔직하게 보여준다.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화려한 액션이나 과장된 폭력을 피하고, 오히려 그 세계의 현실적인 잔혹함을 절제된 시선으로 담는다. 그 안에서 말리크는 점점 변한다. 어린 양 같던 그는 서서히 늑대의 눈빛을 배우고, 결국엔 그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익힌다. 감옥은 그의 인생을 앗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를 성장시키는 곳이 된다. 물론, 그 성장의 끝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감옥은 벽으로 둘러싸인 또 다른 사회다. 말리크가 처음 그곳에 발을 들였을 때,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을 지켜줄 친구도, 배워야 할 룰도 없었다. 약자는 언제나 표적이 된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지 않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숨기고, 조용히 주변을 관찰한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침묵조차 위험할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살인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상황.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법을 깨닫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인간으로 남을 수 없다. 그렇게 말리크는 자신의 첫 번째 죄를 짓고, 그 대가로 감옥이라는 세계 안에서 첫 발을 내딛는다. 이곳에서 생존이란 타인을 누르고 올라서는 것, 약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우게 된다. 감옥은 그를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곳이다.
복종에서 권력으로, 길들여지는 법
말리크의 변화는 단순히 개인적인 성장이나 적응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흐름을 배우는 과정이다. 처음엔 코르시카 마피아 보스 루치아니의 명령을 따르며 살아남는다. 복종은 생존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복종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는 눈을 뜨기 시작한다. 지켜보는 법을 배우고, 기다리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틈을 노린다. 감옥이라는 공간은 끊임없는 심리전의 장이다. 말리크는 그 안에서 권력을 가지는 자와 가지지 못하는 자의 차이를 배운다. 자신이 언제 약자였는지를 기억하며, 그 기억을 무기로 삼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단순히 범죄자의 성장 이야기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이 어떻게 생겨나고, 유지되며, 무너지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말리크는 권력에 길들여지면서, 동시에 그 권력을 길들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복종뿐이었다. 코르시카 마피아의 손아귀 안에서, 말리크는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복종 속에서도 그는 천천히 배워간다.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누가 진짜 권력을 쥐고 있는지. 그는 정보를 모으고, 사람들의 약점을 읽는다. 감옥 안은 단순히 폭력으로만 지배되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이 있었고, 말리크는 그것을 익힌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마피아의 도구가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루치아니의 신임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그 그림자를 넘어서려는 욕망을 키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 안에서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낸다. 복종이 끝나는 순간, 말리크는 스스로를 지배하는 자로 변모한다. 그가 길들여진 게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언자, 그 이름에 담긴 상징
이 영화가 가진 독특함은 마지막에 이르러 더욱 빛난다. 제목 속 ‘예언자’라는 단어는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말리크는 꿈을 꾸고, 그 꿈은 현실이 된다. 그의 비전은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전한 생존 감각이다. 하지만 그 감각은 점차 예언처럼 변모한다. 그의 미래는 스스로 그려낸 것이지만, 마치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이런 설정을 통해 말리크를 단순한 범죄자의 틀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는 권력의 논리를 배우면서도, 그 논리를 넘어서려는 존재다. ‘예언자’라는 이름은 종교적 색채를 띠지만, 동시에 그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현실적인 감옥 이야기이면서도, 인간 본능과 권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말리크의 눈빛은 단순한 범죄자의 것이 아니다. 그 안엔 예언자가 지닌 고독과 책임이 스며들어 있다.
말리크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다. 영화는 그의 꿈과 환영을 통해 그를 예언자라는 존재로 끌어올린다. 감옥에서 겪는 현실적인 경험들과 함께, 그는 종종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꿈을 꾼다. 그것은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그의 본능적인 생존 감각이 만들어낸 예언일 수도 있다. 그 꿈들이 현실과 겹쳐질 때, 그는 점점 자신이 어딘가로 이끌리고 있음을 느낀다. 예언자란 단순히 미래를 보는 자가 아니다. 새로운 길을 열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이다. 말리크가 감옥 안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세력은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니라, 그의 방식대로 재구성된 질서였다. 그는 시스템 안에서 자라지만, 그 시스템을 변형시키고 넘어서려 한다. 예언자라는 이름은 그저 우연히 붙여진 게 아니다. 그는 그 안에 담긴 책임과 고독을 짊어지고,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