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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숨겨진 이야기, 않은 세계, 긴장감

by amange100 2025. 5. 30.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조용한 얼굴 뒤에 숨겨진 이야기

그녀는 누구보다 조용하고 성실해 보였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시장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장을 보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하루를 채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 속에 미묘한 균열이 존재한다. 일상의 틈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이상한 습관들, 예민한 반응, 누군가를 피하는 듯한 눈빛. 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 스스로도 그 이중성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감독 안국진은 이 평범한 여성을 카메라에 담으며, 일상이라는 껍데기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복잡한 본성을 들춰낸다. 카메라는 과장 없이 따라가지만, 그 무심한 렌즈 속에서 보는 이는 점점 더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 비밀은 거창하지 않지만, 그 감정의 밀도는 묵직하다. 무엇보다 천우희의 연기는 그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설득력 있게 쌓아간다. 한 장면, 한 시선, 한숨 하나조차도 맥락 속에서 살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그녀가 감추고 있는 삶의 뒷면에 빠져들게 된다.

그녀는 누구보다 조용하고 성실해 보이는 인물이다. 말수가 적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이웃과 불필요한 대화를 피하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모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그 고요한 일상은 겉모습일 뿐이다. 영화는 그녀의 주변이 아닌, 내면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단정하게 묶인 머리, 반듯한 옷차림, 깔끔한 식탁 그 모든 정돈된 장면들 속에 오히려 불안이 도사린다. 감독은 인물의 말보다는 행동, 행동보다는 공간으로 그녀의 감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방, 부엌, 그리고 비밀스러운 어느 장소. 그 안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진짜 모습은 처음엔 낯설고, 곧 무서워진다. 이 영화는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보다, 비밀이 숨겨져 있는 방식에 주목한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은 세계

이야기는 ‘누가 잘못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인물들이 조금씩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남편도, 동네 사람들도, 그리고 그녀 자신도.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방향은 아니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서툴렀고, 상처는 말없이 반복되었다. 그녀는 결국 현실에 균열을 내버리고, 이중생활이라는 탈출구를 만들었다. 이중생활은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보인다. 성공, 도덕, 여성성 같은 가치들이 집요하게 던지는 기대와 압박 속에서,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외면한다. 감독은 이 틀 안에서 복잡한 심리를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범죄라는 사건 중심의 구조 안에서도 인물의 내면에 더 집중하며, 그들의 선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따라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반복되는 무력감과 침묵 속에, 인간의 본성과 그 사회의 형태가 교차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모두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 남편은 현실에 안주하며 관계에 무심하고, 이웃들은 친절해 보이지만 진짜 관심은 없다. 그런 환경 속에서 그녀는 혼자였고, 그 고립감이 곧 이중적인 삶으로 이어졌다. 이 영화는 범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묻기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심스럽게 추적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견고하지 않고, 공동체라는 말은 형식적이다. 그렇게 그녀는 묻히고, 견디고, 어느 순간부터는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이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도덕성과 역할이 얼마나 무거운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영화는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선택과 침묵이 쌓여 만들어진 풍경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더 큰 무게로 남는다.

불안한 침묵이 만든 긴장감

대부분의 장면은 과도한 음악이나 대사 없이 흘러간다. 카메라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르며, 감정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침묵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긴장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에서도, 관객은 숨을 죽이게 된다. 그것은 ‘곧 무언가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벌어지고 있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듯 말 듯한 상태에서 오는 긴장이다. 그녀의 일상은 겉으로는 단조롭지만, 그 반복 속에서 미세하게 변화하는 표정과 행동이 작은 파열음을 낸다. 그녀가 자주 서 있는 부엌, 늘 들르는 시장, 집 앞 골목 같은 공간들은 안전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낯설게 느껴진다. 이 일상의 공간들이 낯설어지는 순간, 우리는 그녀의 삶도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서서히 조여오는 심리적 스릴을 만든다. 결국 가장 큰 공포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내 곁의 평범함이 서서히 뒤틀릴 때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 공포는 소리 없이 다가온다. 뭔가를 감추려는 표정,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피는 시선, 대사 사이의 어색한 정적. 그 모든 요소들이 긴장을 만들어낸다. 음악은 거의 들리지 않고, 대신 현실의 소음이 공간을 채운다. 냉장고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방송. 그런 일상의 배경음이 반복될수록 관객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발걸음, 움직임 하나하나가 숨을 죽이게 만든다. 놀랍도록 조용한 영화인데, 이상하게도 손에 땀이 난다. 이것은 거대한 반전이나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라, 인물이 처한 정서적 상태에 관객이 동기화되었기 때문이다. 감정이 폭발하지 않기에 더 무섭고, 진실이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기에 더 조여온다. 그렇게 영화는 한 사람의 내면에서 출발해, 사회 전체의 무게까지 천천히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