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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추억 레시피, 다시 꺼내본 그 맛 국물, 무게, 장면

by amange100 2025. 7. 3.

기억 속의 추억 레시피
기억 속의 추억 레시피

기억 속의 추억 레시피 새해 아침의 기억을 불러오는 따뜻한 국물

어릴 적 설날 아침, 아직 해가 뜨기 전부터 부엌에 퍼지던 향기. 하얗고 맑은 국물에 얇게 썬 흰떡이 고요히 떠 있고, 그 위로 계란지단과 김가루, 송송 썬 파가 겹겹이 올려지던 그 순간이 문득 떠오른다. 한 그릇을 앞에 두고도 아직 졸린 눈으로 식탁에 앉아, 엄마가 국자로 떠 주던 그 따뜻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떡을 끓이는 타이밍, 육수의 진한 정도, 고명을 어떻게 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정성스레 만들어진 그릇 하나에, 한 해의 건강과 복이 담긴다는 게 어린 마음에도 신기했다. 지금은 내가 국자를 잡는 입장이 되면서, 그날의 의미와 온도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다. 단순한 아침 식사가 아니라, 가족의 시간이 쌓이는 한 그릇. 그건 단지 배를 채우는 걸 넘어 기억을 이어가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명절마다 들리던 떡 써는 소리는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맑은 국물 위로 떠오르던 하얀 떡 조각은 마치 새해의 설렘을 담고 있는 듯했다. 조용한 식탁에 앉아 조심스레 첫 숟가락을 들던 그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버지의 한마디 덕담, 엄마의 바쁜 손놀림, 그리고 따뜻한 국물의 향. 모두가 함께 모여야만 완성되던 그 시간은 단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는 의식 같았다. 지금은 각자 바쁘게 살아가며 새해에도 모이기 힘들지만, 그 맛만큼은 매년 마음속에서 다시 끓여내곤 한다.

기름 냄새 속에 스며든 엄마 손맛의 무게

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생각나는 부엌 풍경이 있다. 팬 위에 얇게 펴지던 반죽, 지글지글 튀는 기름 소리, 그리고 젓가락 끝에서 돌돌 말려지던 익숙한 손놀림. 한 장, 두 장 겹쳐 쌓인 전의 무게는 그날의 대화와 함께 묵직해졌다. 부침개는 재료가 단순하지만, 익는 타이밍과 뒤집는 타법, 기름의 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어릴 적엔 그저 간장에 푹 찍어 먹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 안에 담긴 디테일이 보인다. 애호박의 수분을 얼마나 짰는지, 김치의 숙성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반죽에 달걀을 얼마나 넣었는지가 맛을 결정짓는다. 그 복잡한 조합이 하나의 음식으로 완성될 때, 우리는 어렴풋이 엄마의 수고를 이해하게 된다. 아마 그날의 바삭함보다, 기름냄새에 녹아든 이야기가 더 오래 남아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채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침개를 부치던 엄마의 등은 언제나 분주했지만 어쩐지 든든했다. 주방 안에 퍼지던 기름 향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사랑과 정성이 뒤섞인 향기였다. 반죽을 고르게 펴고 타지 않게 굽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지만, 엄마는 언제나 일정한 두께와 익힘을 유지했다. 그 기술은 오랜 시간과 경험의 결과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종종 비 오는 날, 나도 그 부침개를 따라 만들어보지만 맛이 닿지 않는다. 그리운 손맛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함께 있었던 시간과 대화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달콤함 속에 담긴 유년기의 한 장면

뜨거운 여름날, 부엌 한쪽에서 졸여지던 고구마 냄새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냄비 속에서 조용히 끓어가던 그 냄새는 설탕도, 간장도 아닌 무언가 더 깊은 것을 품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고구마에 조청을 더하듯 간장을 졸이며 만드는 방식은 단순하지만, 그 과정은 늘 인내를 요구했다. 국물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단맛은 강하지 않았지만 혀끝에 남는 고소함과 촉촉함은 유독 깊게 스며들었다. 그 조림을 먹던 순간엔, 늘 집 안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것 같았다. 요즘엔 그 맛을 흉내 내 보려 해도 도무지 같은 향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재료의 차이보다, 그때의 온도와 시간, 그리고 함께였던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고구마조림이 익어갈 때면 부엌엔 설탕과 간장이 어우러진 구수한 향이 가득했다. 간혹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고구마에 끼얹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조림은 겉은 윤기 있고 속은 촉촉해서 입안 가득 퍼지던 고소함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렇게 조려진 고구마는 밥반찬으로도, 가벼운 간식으로도 손색이 없었고, 식구들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는 시간에 조용히 중심을 잡아주었다. 그런 기억 속 음식은 지금도 바쁜 하루 속 작은 쉼표가 되어 주곤 한다.